지리산이 빨치산의 활동무대가 되며 국군과 경찰의 토벌작전이 이어지며 주요 문화재들이 큰 피해를 입었다.
1951년, 국군 지휘부는 구례 화엄사가 빨치산 은신처로 활용될 수 있다고 여겨 사찰을 전부 태울 것을 명령했고,
당시 전투경찰대장으로 일하던 차일혁 총경은 고민을 거듭했다.
"절을 불태우는 데는 한나절이면 족하지만, 절이 오늘에 이르는 데는 천년이 걸렸다."며 차 총경은 각황전 문짝만 떼어 불을 질러도 빨치산이 은신할 수 없다는 논리로 화엄사를 지켜냈다.
국보 제67호 각황전이 있는 화엄사는 이렇게 전쟁에서 살아남을 수 있었다.
차일혁 총장은 명령 불복종으로 오래도록 어려움을 겪다가 1958년 사망하였고,
53년 만에 2011년 경무관으로 승진 추서되었으며,
2013년 경찰로서는 최초로 '대한민국 호국 인물'로 선정되기도 하였다.